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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토토사이트 시초부터 현재까지 모든 역사 정리 (Since 2006~)

한국 최초의 사설 토토는 2006년에 황금성이라는 릴 게임 사이트에서 서브 메뉴에 ‘황금성 토토’라는 서브 메뉴로 토토를 운영한 것이 시초였습니다.

본 기사에서는 이제는 우리의 일상에 뿌리 깊게 자리 잡힌 사설 토토사이트의 시초부터 현재까지 모든 역사를 간단하게 되짚어보겠습니다. 추가로 원화 입출금을 지원하는 해외배팅사이트 목록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006년 최초의 사설 토토사이트 탄생

당시엔 릴 게임 전문 사이트인 그들은 오즈포탈, 해외배당 같은 개념이 없어 그냥 XX맨에 몇 개 안되는 경기만 퍼와서 배당 조금 올려주고 운영을 시작한 것이었지만,

상상 이상으로 유저들에게 황금성 토토의 반응은 좋았고 돈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사설 토토 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이 2006년 하반기입니다.

그 이후 1년이 지날 무렵 공식 토토 XX맨에 있는 메인 경기들만이 아닌, 축구 잡리그와 미국의 슈퍼볼, 하키 배팅에 이르기까지 많은 경기들을 취급하는 사설 토토 솔루션 업체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것은 곧 사설 토토사이트의 대유행을 알리는 서막이 됩니다.

2007년 사설 토토사이트 대유행의 서막

이 시기는 애플의 아이폰이 처음 나왔고, 삼성의 갤럭시가 처음 소비자들 앞에 등장했을 시기입니다. 고로 굉장히 기막힌 타이밍인 것이죠. 사람들은 바깥에서도 네이버나 다음을 이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오래전부터 기다려왔고, 국내에서 사전 예약만 150만 건이 넘을 만큼 스마트폰 시장은 초반부터 굉장히 가파르게 성장했습니다.

그 결과 사설 토토 시장도 나비효과로 인해 전 연도와 비교해 수십 배는 더 흥했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단 500개의 사이트들로 온라인 도박 시장 규모가 4조 원에 육박하게 됩니다.

2008년 사설 토토사이트 대유행의 시작

2007년까지는 사설 토토 사이트들이 아직까지 정비가 안 된 시장이고 밥그릇도 풍족한 만큼 따로 온라인 마케팅을 하지 않고, 지인 추천을 통한 파도타기 운영을 통해 조심스례 운영을 해왔었다면, 2008년엔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에 홍보를 하기 시작했고, 대출 업체들의 DB를 빼돌려 문자를 뿌리는 등 일반인들의 일상에서도 보이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이미 이때는 토토 솔루션 업체들도 굉장히 많았고, 서서히 우리들의 일상에서도 이들의 존재가 보였던 시기라, 많은 사람들이 불법 스포츠토토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결과 2007년 500여 개밖에 되지 않았던 사이트는 2008년에 2000개 이상으로 많아지게 됩니다.

2009~2010년 사설 토토의 시장 영역 확장

일부 전문가들은 국내 유일한 합법 토토사이트이며 독과점으로 운영되는 XX맨의 연간 시장 규모(17.3조원)를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은 넘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2009년 사설 토토 시장의 규모는 합법 토토 시장을 가볍게 넘겨버리고 맙니다.

사설 토토 사이트는 2009년 초부터 2010년 말까지 이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도박 중독이라는 바이러스에 전염시켰습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우리들은 스마트폰으로 다폴더 보너스 배당을 받기 위해 폴더를 묶고 있었습니다. 기억나실 겁니다.

2011년 정부의 불법 도박 대대적 단속 시작과 사설 토토의 보안 강화

2011년 정부의 단속 의지를 불태우는 김제 마늘밭 사건이 터집니다. 김제의 시골 마늘밭에 평범한 60대 부부가 갑자기 한순간에 벼락부자가 되어 마늘밭을 사고, 호화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배가 아팠던 이웃 주민은 그들이 여행을 떠났을 무렵 그들의 농작물을 모두 훔치고 마늘밭을 망가트리려는 계획으로 포크레인을 타고 땅을 파기 시작했는데, 자그마치 그 시절에 110억 원의 돈뭉치가 발견되면서 도둑이 제발 저려 자진신고를 한 사건입니다.

경찰은 곧바로 조사에 들어갔고, 결과는 60대 부부의 친아들인 김 모 씨의 돈으로 그는 바둑이 사이트의 운영자로 밝혀졌습니다. 그 이후 온라인 도박 시장 규모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는 대통령까지 공개 발언하며 사설 토토 사이트의 대대적인 단속을 펼칩니다.

그 당시 지인 신고 및 멋모르고 한국 사무실에서 서버를 세팅하고 운영했던 운영자들은 모조리 검거되었고, 이후 사설토토사이트들은 그동안은 서버만 외국에 두고 한국에서 사무실을 돌리며 운영하는 곳들이 대다수였지만, 계속되는 단속의 두려움으로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등 인터넷 속도가 빠르고 한국과 비교적 가까운 동남아로 본진을 대거 이동하게 됩니다.

2012년 네임드 사다리의 탄생

2011년은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으로 인해 많은 유저들이 이탈했고, 징역의 무서움에 사이트를 접는 사장들도 많았습니다. 물론 돈을 포기 못했던 사장들은 가입은 받지 않은 채로, 기존 유저들로만 운영하며 단속이 끝나기 만을 버티던 암흑기였습니다.

이때 사설 토토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네임드 사다리가 탄생합니다. 여러모로 타이밍도 기가 막혔던 시기라 네임드 사다리는 정말 모든 사설 토토 사이트의 메뉴에 걸리며 대박을 치게 됩니다. 또한 사설 토토 역시 다시 네임드로 인해 윤활유를 얻게 됩니다.

2013년 양방배팅의 대유행과 사설 토토 사이트의 본격적인 먹튀 시작

불법 스포츠 토토의 역사를 되돌아봤을 때 가장 핵심인 연도가 언제냐 한다면, 바로 2013년입니다. 이때 굉장히 많은 이슈들이 터졌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 무조건 미적중 없이 돈을 따는 양방배팅이 그 주인공 중 하나였습니다. 이 양방배팅은 ‘무조건 돈을 딴다’는 메리트로 주부, 학생, 직장인 구분 없이 남녀노소 모두가 양방배팅을 했던 시기였습니다.

이때 양방배팅을 주도했던 인터넷 카페 두 곳이 있었습니다. 28,000명의 카페 회원을 보유했던 네이버 카페 ‘양방의 신‘과 다음 카페에서 12,000명의 회원 수를 보유했던 ‘스보벳 코리아 에이전시‘ 카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카페 주인장은 모두 동일 인물이었고, 같은 날 한 번에 회원들의 돈을 먹튀했습니다. 피해 금액이 자그마치 800억 이상이었는데, 소문으로는 대포통장 500개로 자금을 빼돌려 필리핀으로 도주했다고 합니다.

두 번째로는 사설 토토 사이트들의 먹튀가 시작된 것입니다. 양방배팅이야 자기 사이트에 양방 경기를 배팅하면, 프로그램 돌려서 양방 경기로 잡힐 시 전액 몰수하거나 원금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사설에서 나름 방어를 했지만, 정작 머저리 같은 사설이 먹튀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네임드 사다리였습니다.

네임드 사다리 유출픽, 조작픽을 판매하는 업체들이 생겨났고 그들의 근원지는 네임드 직원들이었습니다. 하루 결과값을 이미 알고 있는 그들은 월급으로 꼴랑 200만 원만 받자니 뭐 같아서 오프라인으로 도모해 현장에서 현금을 건네받으며 감시 아래 픽을 파는 유출픽 업체를 만든 것이죠.

이것은 사설에게 치명타가 되었지만, 그들은 네임드 사다리 게임을 차마 없앨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배터의 70% 이상이 사다리를 탔었으니까요.

이때 불법 도박 시장의 규모는 공식 토토의 2.5배 이상을 넘긴 42조 원을 기록했습니다.

2014년 먹튀 검증 사이트의 탄생

누군가에게 위기는 누군가에게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2014년 최초의 먹튀 검증 사이트인 먹튀폴리스와 슈어맨이 탄생하게 됩니다. 시기상 그들의 등장은 매우 적절했고, 콘텐츠는 대성공을 이뤘습니다.

이후 물밀듯이 많은 검증 업체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오는 먹튀 제보로 인해, 비로소 사설의 막 나가는 실체가 밝혀지면서 이때 자리를 못 잡은 사이트들은 먹튀 제보를 당해 나가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바닥 돈을 포기 못해, 입금하면 먹튀하는 ‘입금 먹튀 사이트’들을 찍어내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 해외 배팅 사이트의 한국시장 진출, 사설 토토의 입지 약화

2013년 양방배팅의 붐이 불며 한국 시장의 규모를 비로 소야 알게 된 해외배팅사이트들은 라이센스를 발급받은 당국에서 한국인 직원들을 모아 페이먼트를 설립해, 한국 시장을 론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진출한 사이트들로는 대표적으로 1XBET, 맥스벳, 다파벳, 12벳이 있습니다.

안 그래도 믿었던 네임드 사다리의 통수와 검증사이트들의 먹튀 제보 공격으로 양쪽에서 후두려까니 정신없어 죽겠는데, 자신들은 비빌 수조차 없는 거대 배팅 업체들이 한국에 진출한 것은 사설에게 굉장한 심리적 타격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때 정말 많은 사설 토토들이 망연자실하며 사이트를 접었습니다. 한때 추정 사이트만 1만 개에 육박했던 사설 토토는 2015년 이후로 대략 3-4000개 정도 있다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2018~2019년 사설의 최후의 발악

2016~2017년도는 정권이 바뀌고 남녀평등 문제로 매일 시끄러운 시기라 사설 토토들에겐 소리 소문 없이 조용한 시즌이었기에, 따로 언급할 것 없이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그리고 2018년도 해외배팅사이트와 도저히 게임이 안된다고 판단한 사설 토토 사이트들은 토토에서 미니게임으로 주 종목을 바꾸는 모험을 하게 됩니다.

이때 그래프 배팅인 부스타빗이 탄생하게 됩니다. 사다리급의 빅히트는 아니어도 히트는 쳤다고 평가받는 이 그래프 게임은 영국에서 부스타빗이라고 불리는 배팅인데, 사설들은 이 게임을 가져다가 쓰니 조작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영국 부스타빗을 가져다 쓰는 게 아니고, 한국인이 만든 배당 설정 기능과 조작이 가능한 부스타빗 솔루션을 받아 제공한 것으로, 머리 좋은 배터가 해시값 분석과 프로그램 파밍을 통해 조작이라는 게 입증되고 망했습니다.

이후 사설은 최후의 발악을 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지뢰찾기 토토(붐붐마인즈), 함수값 배팅, 엔트리 키노 사다리 등 온갖 이상한 게임들을 만들고 가져왔습니다.

부스타빗에서 성공을 했어야만 했는데, 미니게임 대장주가 조작이라는 것이 입증된 마당에 후발 주자로 나선 미니게임들이 망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죠. 네 그렇습니다. 아주 시원하게 망했습니다.

2020년 ~ ing 해외배팅사이트의 시대

2019년까지만 해도 해외배팅의 입지가 완전히 도드라진 시기는 아니었고 모든 배터들이 아는 것이 아니였기 때문에, 해외배팅사이트를 모르는 배터들은 먹튀를 당하지 않기 위해 슈어맨에서 메이저코드를 웃돈 주며 구매하고 그랬었죠.

하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는 해외배팅사이트 1XBET의 활약으로 라이브 스코어 앱을 봐도 배터들이 채팅방에서 배당판 이미지를 첨부하는 것 보면 모두 해외 배당판이고, 유튜브에서 자기 도박 썰 풀 때 인증하는 배팅 슬립 사진 또한 역시 해외 배당판인 것을 봤을 때 완전히 돈이 해외배팅사이트로 몰린 게 실감이 납니다.

2006년부터 2019년까지 14년 동안은 사설 토토사이트의 시대가 맞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주도권이 해외배팅사이트로 넘어오게 되면서 먹튀 제보글이 올라오는 게 딱히 없어 문 닫는 검증업체들도 많아지고, 어디서 먹튀당했다는 사람들도 이제 잘 안 보이는데요.

14년이라는 시간은 시행착오의 기간이였고, 이제 먹튀없고 유저에게 유리한 배팅 환경도 해외배팅사이트라는 회사들로 인해 누릴 수 있게 되었죠.

흙탕물 걸러지는 시간이 꽤나 길었지만, 그래도 그만큼 결과는 매우 좋게 흘러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원화 입출금을 지원하는 해외배팅사이트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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